바람과 함께 나타나다
이선영(미술평론가)
강성훈의 작품 속 동물들은 바람처럼 자유롭다. 그것들은 중력에 얽매인 둔중한 무게를 떨쳐내고 대기를 가르며 나아가며, 미세한 주름들의 뭉침과 풀림을 통해 바람의 원소로 흩어지기도 한다. 전시부제인 ‘windymal’은 windy와 animal의 합성어로, 바람과 일체화된 상태를 강조한다. 그의 작품에서 동물과 바람의 결합은 외적이거나 기계적이지 않다. 다한증이 있는 작가에게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며, 바람을 맞고 있는 동물들에게서 몸 속 깊은 곳으로부터 발원하는 쾌가 감정 이입된다. 언제나 인간과 비유될 수 있는 동물들의 굴곡진 근육 형태 안팎으로 흐르는 바람을 금속선의 흐름으로 가시화 한 것이 그의 조각이다. 이 자유로운 바람의 존재들이 엄청난 노동력의 결실이라는 점도 역설적이다. 만약 예술 창조의 비밀이란 것이 있다면, 양적인 것이 질로 전환되는 지점, 또는 필연으로부터 자유로의 도약이 이루어지는 어떤 지점에 있지 않을까. 그의 작업은 동선 용접에 시간이 많이 드는 노동 집약적 작업이지만, 이미 정해진 형태의 재현에 목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windymal’은 말 그대로 그날의 기분(바람)에 따라 달라진다. 강성훈의 작품은 일종의 입체 드로잉이라 할 수 있지만, 실제 드로잉을 많이 하지는 않으며 드로잉대로 형상화하는 것도 아니다. 그의 작품은 제작 시에 형태를 잡아가는 시점에서의 즉흥성과 감각적인 부분이 중요하다. 그것은 동물 뒷부분에서 형상화되곤 하는 움직임의 속도감이나 바람의 카오스적인 느낌을 강조한다. 그래서 그의 조각은 정적이지 않고 역동적이다. 3차원 공간을 점유하는 부피를 가지면서도 비물질적인 요소가 포함되는 그의 작품은, 동일한 존재 안에서 차원이 변화되는 순간을 포착한다. 변주는 포지티브/네가티브, 조각/회화, 물질/비물질 등, 여러 차원에서 일어난다. 변환의 지점이 강조되기에 출발점이 되는 존재의 리얼리티가 확보될 필요성이 있다. 이러한 변증법 때문에 신화 속 가상 동물 같은 존재는 이 전시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수많은 동선들을 용접하여 만들어진 선의 다발들이 이합집산하면서 다양한 동물의 몸체를 만들고, 몸통의 일부분이 풀려서 공중으로 휘날리는 것 같은 모습이다.
몸체 자체가 주름 다발과 불규칙적인 구멍들로 이루어져 있고, 뒤 흘림 또한 가변적 형태를 이루는 요소이기 때문에, 조명을 통해 보다 역동적인 효과를 연출할 수 있다.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드로잉은 그림자의 차원에서 재차 변주되는 것이다. 완전한 형태를 알아볼 수 있는 것으로는 코끼리, 하마, 바다사자, 양, 호랑이(범치) 등이 있고, 뒷부분이 많이 흘려진 것으로는 코뿔소, 독수리, 장수 하늘 소, 돌고래 등이 있다. 독수리 등, 뒷부분이 많이 흘려진 형태의 작품은 벽에 설치되어 회화에서 입체로 변환되는 효과를 준다. 동물의 피부를 이루고 있는 털이나 주름의 구성요소인 동선들은 2mm에서 6mm까지 다섯 가지 종류가 있다. 드로잉에 다양한 굵기의 연필이나 붓을 사용하듯이, 사이즈와 비례에 맞는 것을 사용한다. 동선 하나하나가 공중에 그려진 드로잉을 위한 필기구가 되는 것이다. 동선으로 이루어진 이 입체 드로잉에 스테인리스 스틸로 뿔, 이빨, 발톱 등 동물의 특징적인 부분에 포인트를 준다. 그것은 비물질적인 차원과 상호작용하는 존재의 리얼리티를 확보하게 한다.
바람과 함께 나타나고 사라지는 강성훈의 동물상은 ‘만물이 끝없이 흐른다’는 루크레티우스의 철학을 연상시킨다. 그의 조각은 흐르면서도 리얼리티를 잃지 않기에, 흐름과 로고스를 결합시키는 고대 자연철학과의 유대가 발견된다. 콜링우드는 [자연이라는 개념]에서 그리스의 자연과학은 ‘자연세계에는 정신(mind)이 충만하다’는 원리에 기초하고 있다고 말한다. 고대인들이 생각했던 자연세계는 운동하는 물체(body)들의 세계였다. 그리스인들에 따르면 운동 자체는 생명력 또는 영혼에 기인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도 자연세계는 스스로 운동하는 사물들의 세계, 즉 살아있는 세계이며 근대의 물질세계에서와 같이 관성으로 특징지어지는 세계가 아니라, 자발적인 운동으로 특징지어지는 세계이다. 자연 그자체가 과정이고 성장이며 변화인 것이다. 날개달린 발꿈치로 바람처럼 돌아다니며 전령사 역할을 하는 신 헤르메스를 책 제목으로 삼은 미셀 세르는 순서관계에 의해 구조화 된 고전적 체계에 바람을 불어넣는다.
세르는 [헤르메스]에서 체계라는 용어에 내재된 균형과 조화 대신에, 발동기를 강조한다. 태양계는 발동기이다. 태양계의 중심에서 일어나는 것은 온도 차이에서 일어나는 운동이다. 운동은 연속적인 형성을 낳는다. 창조는 어느 날 시작되었지만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최초의 상태인 분포는 아주 조금밖에 지속하지 않는다. 세르의 우주발생론에서, 최초의 불타는 성운에서 생겨난 세계의 체계는 냉각되고 굳어진다. 그리고 오늘날 행성은 견실한 핵 위에 바다의 옷과 기체성의 외투를 걸치고 있다. 이것들은 행성의 역사를 말해주는 표적이다. 여기에 일반 물체의 형성법칙이 있다. 사물들의 형성처럼 인류의 역사도 물렁물렁한 것에서 견고한 것으로, 끈적끈적한 것에서 단단한 것으로 나아간다. 강성훈의 조각은 체계로 굳어지기 이전에 벌어지는 사건과 상황들로 소급된다. 에너지와 정보의 흐름들이 들고나는 그의 작품은 발생과 성장 소멸이라는 시간성이 한 공간 안에 압축되어 있는 살아있는 체계이다. 다양한 동물 형태에 특징적인 굴곡 면을 따라가는 그의 작품은 구조적인 안정성이 있으면서도,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는 불연속의 공간이 있다. 여기에서 다른 형태가 발생되고 변환된다.
강성훈의 작품은 동물들에 내재된 힘찬 형태 감각을 잃지 않으면서도 유동성이 공존한다. 마치 지문이나 지형도같이 펼쳐진 미세한 주름의 다발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에너지이다. 그의 작품에서 자연은 에너지의 형태로 현존한다. 그것은 ‘모든 체계가 묶인 에너지’(미셀 세르)라는 것을 보여준다. 강성훈의 작품에서 체계와 역학관계에 놓인 에너지는 바람이라는 현상으로 특화된다. 선의 뭉침과 갈라짐의 관계를 통하여 만들어지는 바람은 난류를 형성한다. 혼돈의 이론으로 고전적인 과학이론을 대체하려는 미셀 세르는 [해명]에서, 액체적이고 유동적인 난류의의 구성요소들이 변동하기 때문에 체계를 이루지 않고 일종의 합류점을 만든다고 말한다. 가장 단단한 굳은 것들도 다른 것보다 조금 더 점성이 강한 액체에 불과하다. 관계는 구체적인 형태를 부여한다. 다시 말해 실체를 낳는다. 세르에 의하면 난류란 모든 축척에서의 무질서 상태이며, 큰 소용돌이 속의 작은 소용돌이이다. 그것은 불안정하다. 일단 난류가 시작되면 교란은 폭발적으로 커진다. 연기는 처음에는 순조롭게 피어오르면서 가속되다가 임계속도를 지나면 여러 갈래로 쪼개져 거친 소용돌이가 된다.
유체에는 소용돌이가 생기고 그 속에 더 작은 소용돌이가 생기게 되며, 그 각각은 유체 에너지를 소멸시키면서 독특한 리듬을 만든다. 강성훈의 작품에 새겨진 크고 작은 소용돌이에는 생성과 소멸, 흐름과 율동, 전진과 탈주가 공존하는데, 그것은 그의 작품이 욕망과 물질의 과정이 공유되는 지점에 놓여 있음을 알려준다. 움직이는 동물로부터 발산되는 생명력은 유기체로 한정지을 수 없는 흐름을 만들어낸다. 연장과 증식에 의해 만들어지는 소용돌이는 들뢰즈가 [주름]에서 말하듯이, 직선이 언제나 곡률로 뒤섞여 있음을 알려준다. 그에 의하면 변동을 주름으로 만들고, 주름 또는 변동을 무한으로 실어 나르는 변곡이 있다. 주조(鑄造)하는 것은 한정된 방식으로 변조하는 것이며, 변조하는 것은 영원히 변화하면서 연속적인 방식으로 주조하는 것이다. 주름들을 포괄하고 있는 것은 또다시 주름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고정된 좌표계로부터 출발하고 규정되는 지루한 노동으로부터 예술을 분리시킨다. 닫힘으로부터의 열림으로의 이동은 유기체의 항상성을 위협할 수 있는 치명적인 요소이지만, 굳어진 체계를 지배하는 닫힘은 더 억압적인 죽음의 요소이다. 강성훈의 작품에서 더 많이 분할하고 더 많이 분산시키려는 물질과 에너지의 흐름은 다양성, 즉 ‘n개의 결정 인에 의해 정의되는 다양체’(들뢰즈)를 향하고 있다.
작가 홈페이지 : http://kangsunghoon.kr/
강성훈, 조각가 강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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