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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전시서문, 평론

[이재삼]달빛 인간과 자연의 합일을 그리다.

달빛

인간과 자연의 합일을 그리다.


임대식(아트사이드 큐레이터)


달빛이 가장 빛나던 밤. 눈길을 걸어본 사람은 기억할 듯 하다. 그 달빛이 비추는 눈이 얼마나 환하고 그윽하게 빛이 나는지. 그 빛이 얼마나 따뜻하게 느껴지는지. 달빛은 그렇게 밤에 빛나는 사물을 만드는 빛으로 인간의 가장 내면적인 정서를 비춰왔다. 어두운 밤에 어두운 사물은 더욱 어둡게 밝은 사물들은 더 밝게 비추는 것이 달빛이다. 즉 흑백의 경계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면서 사물들을 부드럽게 드러낸다. 또한, 달은 그 자체로 오래 전부터 많은 이들의 정서가 소통되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대상이었다. 농경이 주요 생산활동이었던 예전에 달은 절기를 나누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따라서 달은 기울고 차기를 반복하면서 생산활동의 중심에 있어왔다. 또한, 달은 예로부터 밤 하늘 한 가운데 높이 떠 세상을 내려 다 보는 존재로서 기복의 대상이었다. 가까이는 가족들의 안위와 행복을, 멀게는 떠나간 이들의 평안을 기복하는 대상이었다. 말하자면 달은 수많은 사람들의 바램과 삶의 애환을 담고 있는 자연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존재였다.

이재삼 작가는 끊임없는 이 달빛을 그려왔다. 그는 이 달빛에서 면면이 이어져 오는 한국인 특유의 정서를 찾고 있다. 서양의 사고방식이 낮에 밝게 빛나는 햇빛과 같이 이분법적 논리와 같은 극명한 대립과 비교에 의해 발전되어왔다면 우리의 사고방식은 밤에 빛나는 달빛처럼 대립보다는 융합을, 비교보다는 전체적인 관망을 통해 발전되어 왔다. 어둠은 어둡게, 밝음은 밝게 표표히 사물을 비추는 달빛은 그 자체 조화롭다. 사물을 전체적으로 비추는 햇빛은 대상을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으로 극명하게 대립시킨다. 그러나 달빛은 밝고 어둠을 극단적으로 경계화하지 않는다. 즉, 밝고 어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물아일체의 조화를 고집스럽게 믿어 왔던 우리의 정서를 그대로 담고 있다. 작가 역시 이 달빛의 조화를 고집스럽게 그려왔다.

이재삼 작가의 달빛이 지닌 또 다른 특징은 한국적 정서를 담뿍 담은 달빛을 목탄으로 그린다는 것이다. 목탄은 주로 그 재료의 특성상 작품의 스케치를 위해 사용되는 재료였다. 그러나 작가에게는 목탄은 그 어떤 재료보다도 달빛을 표현하는 완벽한 재료다. 또한 목탄은 그 제작과정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연을 대표할 수 있는 나무가 변형되어 만들어진 재료다. 따라서 작가는 자연으로 자연의 가장 순수한 시간인 밤과 그 밤을 비추는 달빛을 그리는 것이다. 캔버스 위에 목탄만으로 그려진 작가의 달빛은 캔버스가 지닌 고유의 색 그대로를 달빛으로 치환한다. 캔버스의 면은 또한 우리가 즐겨 입어왔던 의복의 주재료로서 서민들의 의복을 책임지던 매우 중요한 천이다. 작가는 이러한 면이 지닌 고유의 색에서 달빛과 같은 한국인 특유의 소박하고 멋스러움을 찾았다.

자연과 인간, 육체와 정신과 같이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여 무엇이 우선적으로 중요시 되어야 함을 정해야 했던 서양의 사고방식은 항상 선택과 그 선택의 기준이 중요한 문제였다. 현대에 와서 그 물질과 정신의 합일에 대해 논의하게 되면서 이분법적 사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지만 불과 한 세기 전만해도 물질과 정신같은 이분법적 놀리는 매우 합리적인 사고 체계였다. 그러나 이 이분법적 논리는 결국 나와 타자를 구분하게 되고 이러한 구분은 우열을 가리는 기준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러한 우열은 곧 권력화 되면서 합리적인 지배구조를 만들고 이 지배구조를 토대로 합목적적 폭력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사회는 지배구조의 핵심 권력을 지키고자 이 합목적적 폭력을 용인하게 되고, 피지배구조는 이에 반목하는 이른바 지배구조의 붕괴를 위한 폭력을 행사하게 된다. 이로 인해 발생하게 되는 비인간성이야말로 인간 스스로는 물론, 전지구적인 환경파괴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그에 비해 동양의 사고체계는 이른바 자연과 인간의 합일을 최고의 가지로 두고 있다. 화해와 융합을 기본으로 하는 사고는 자연과 인간, 정신과 물질이 하나인 것에서 시작된다. 인간의 이성에 의한 자연의 지배에서 오는 이질감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순간 정신과 물질, 나와 타자의 경계가 완전히 사라진 순수한 존재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순수한 존재감이야말로 인간의 정신과 육체가 추구하고자 하는 최고의 경지로서 이재삼 작가가 궁극적으로 달빛을 통해 보여주고하 하는 것 역시 그것이다.

이재삼 작가의 이러한 달빛은 그의 대나무, 매화, 소나무, 물 등 우리의 자연을 통해 표현된다. 달빛을 담뿍 담은 작가의 소재들은 각각의 소재들이 지니고 있는 소재적 특성에서도 그렇고 묘한 흑백의 경계에서도 그렇고 한낮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작가는 이러한 소재들을 통해 소재에 닿은 달빛뿐 아니라 웅장함과 숭고함도 함께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숭고함과 웅장함은 단순히 작가의 거대한 캔버스의 사이즈에서만 느끼는 것은 아니다. 물론 가장 먼저 거대한 크기의 캔버스에 압도 당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캔버스 크기에 걸맞게 실제 달빛을 머금은 소나무나 대나무 혹은 물보라가 이는 폭포 등을 그 실제의 느낌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 같은 웅장함에 압도 당한다. 어느덧 이는 작품 앞에 서 있다기 보다는 그 거대한 자연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착각과 함께 관객 역시 작가의 작품에 가득 찬 달빛이 온몸을 감싸고 있음을 느낀다. 작가는 달빛 머금은 물안개가 잔뜩 되어 오르는 넓은 호수 위에 한 마리의 새를 그려 놓았다. 자연 앞에서 새 한 마리야 한 점과 같은 존재일 뿐이지만 자연은 그 역시 자신의 부분으로 품고 있다. 결국 작가는 자연과 인간의 궁극적 합일을 위해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 것으로, 자연의 눈으로 스스로를 성찰하고 깨달음을 추구해 나갈 것을 전하고 있다. 




이재삼, 서양화가 이재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