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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전시서문, 평론

[이경재] 女體 , 그 이상적 형태로서의 생명

女體 , 그 이상적 형태로서의 생명 


어느 미술사학자는 폴 세잔느가 사과를 그린 이후로 화가들이 그린 사과가 사람들이 먹어치운 사과 보다 더 많다고 발표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아마도 지구상에 살고 있는 여자의 숫자보다 예술가들이 그림으로 그린 숫자와 조각으로 만든 여자가 훨씬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화가나 조각가에게 있어 여체라는 대상은 모든 사물을 표현하는데 있어 가장 기본적인 예술적 대상이 되어 왔다. 그런 이유로 동서를 막론하고 여체에 대한 예술가들의 탐구는  그 인간의 역사 만큼이나 오래 거슬러 올라간다.

 

1909년 오스트리아의 빌렌도르프에서 발견된 10.3Cm 크기의 석회암 조각인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는 3만년 - 2만5천년 정도로 그 역사가 깊다. 그 외에도 우리는 조형적인 측면에서 기원전 6천년전의 터어키에서 발견된 <여인 좌상>이나 <여인> 등에서 우리는 그들이 갖는 인체의 단순한 표현이 얼마나 아름답게 그리고 예술적으로 성숙한 채 완성되어 있는 가를 볼 수 있다 .


기원전 4-3000년전 이집트의 마마리아에서 발굴 된 테라코타로 만든 여인상에서는 여체를 다루는 사람들이 갖는 예술적 감각과 그 높은 조형성의 아름다움이 오늘날 우리가 보아도 그 뛰어난 감각에 놀라게 한다. 물론 인체에 대한 이런 탐구 뒤에는 미적인 측면 외에도 기복적인 신앙의식이 내재 되어 있음을 지나쳐서도 안 될 것이다. 이렇게 연원이 깊은 인체에 대한 표현이 한 조각가에게 남다른 의미를 가진 작업의 대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면 이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현상인지도 모른다. 이경재 작업의 출발은 비교적 초기부터 인체에 대한 깊은 관심을 보여준다. 아마도 청년기 수업시절 조각에 대한 기본적인 수업이 인체표현에서 부터 시작되고 있음을 고려한다면 그의 여체에 대한 애착은 그다지 특별 한 것이 아니다.    


그는 그런 과정을 거친 후에도 오랫동안 그의 스승 밑에서 조각의 기본이라고 할 인체표현을 철저하게 표현법을 체득 해 왔다. 그런 후 그는 "수세기 이래로 베르실리아 해변의 장관과 장엄하고 웅장한 알프스 산맥에 둘러 쌓인 토스카나 지방의 작은 도시 카라라" (아드리아노 가스페리)로 건너가 카라라 국립미술원에서  년간 유학생활을 했다. 한국의 대부분 돌조각을 하는 작가들이 마치 "에꼴 드 카라라 "라고 부를 만큼 그곳은 구상성이 강한 조각가들이 한국조각의 또 다른 흐름을 형성 해 왔다. 이경재가 줄곧 고집스럽게 돌덩어리를 고집 하는 것도, 그가 여체를 집요하게 다루고자 하는 것도 이런 그의 예술적인 작업의 배경들과  무관하지 않다 .    

           

그러나 그의 여체들은 확실히 이전 그의 선배들의 작품과 공통점과 차이점이 섞여 있다. 예를들면 그의 작품에는 풍만한 인체묘사와 형태에 대한 부드러운 접근, 모성애적인 사랑의 감정을 담아내는 기교 등이 눈에 뛴다. 또한 극히 부분적인 표현 -눈과 머리- 으로 부부를 구별하거나 암시하는 기법, 대칭적인 형태를 통해 비례의 아름다움을 각인 해 내는 기술은 이경재가 가장 자신 있어 보이는 부분으로 기존 작가들과의 차이점을 보인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체를 다루는 조각가들이 이러한 표현에 익숙하고 세련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 특히 누워 있는 여인의 와상이나 입상에 대한 스타일은 서양 조각에서 간간히 보아온 것이기도 하다 . 여체에 대한 표현이 자세나 포즈에서 한정적인 관계로 유사성을 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 이런 작품의 경향들은 서양에서도 빈번하게 발견 된다 .


여체에 대한 표현은 로댕의 <다나이드> 그리고 마이율의 <지중해>, 그리고 헨리무어에 와서 여체는 구상성의 절정을 보이고 있지만 대부분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더 많다. 그만큼 여체의 표현이 어렵다는 것을 말해주며 독특함을 가지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물론 최근에 페르난도 보테로가 그 여체조각에 새로운 형식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이 풍만함과 아름다운 미의 조형에 충실하다면 오히려 이경재 조각의 특징은 우선 한국적인 감성을 그가 담아내는데 주력하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이경재는 그런 한국적인 감성을 그의 작품속에서 포근함, 수줍음, 포용, 관용, 다정함, 인자함등으로 그들과는 다른 느낌의 작품들을 보여주고 있다. 여인을 표현한 작품 전체에서 보이는 따뜻하고 정겨운 것들은 모두가 다 수줍은 자세와 팔을 가지런히 모으고 있는 부분등에서 집약 되어 있다. 왜 인체를 강조하는 가를 이경재는 스스로 "신이 창조한 삼라만상 중 가장 선택 받은 아름다운 미" 라고 여체를 정의하고 있는데서도 명백해진다.  그러나 그의 조각의 비례나 형태는 다분히 서양에서는 말하는 비율이나 크기 기준에 상관없이 비현실적이다. 그래서 무엇보다 이경재 조각의 특징은 그 인체의 정겨운 표현에 있으면서 형태나 크기를 비현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 그의 조각에 주요한 특성으로 드러난다. 그 비현실적인 형태는 인간의 본능과 만나 새로운 감정을 야기시킨다. 예를들면 그의 조각속의 눈매와 표정등은 모성과 여성으로 가득찬 여인의 자유스러운 그러면서도 수줍은 인상은 그가 얼마나 여인에 대한 눈길이 얼마나 따뜻한가를 확연히 보여준다. 반면 그는 대리석 덩어리에 그의 지문을 찍어가면서 그 안에서 여인 또는 모성을 가진 어머니, 여인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자유와 평화를 얻고 있다.


거칠은 돌덩어리가 하나의 아름다운 여인으로 되살아날 때 그는 러시아 태생의 미국 조각가 아키펭코 (A. P. Archipenko)나  헨리무어가  보여 주었던 언제나 아름다움과 생명성 그리고 구성의 원칙에 전혀 어긋나지 않게 노력했던 체험을 작가의 한 이상으로 다짐했을 것이다. 그러나 좀 더 젊은 작가로서 나는 그가 새로운 형태나 독창적인 양식을 구축 해 주길 기대한다. 아직 그는 너무 고전적인 것에서 얻어올 것이 많다고 믿고 있는 듯하다. 많은 훌륭한 작가들이 1929년에 제작된 헨리 무어의 누워있는 와상들을 재현하면서 그들이 그들의 언어를 세련 시켜 왔던 것처럼  고전적인 걸작들은 우리에게 더없이 훌륭한 스승이다 .


1918년 빌헬름 렘부르크의 <남자 좌상>은 로댕에게<생각하는 사람>을 제작하는데 어떤 영감을 주었을 것이다. 이제 이경재에게 있어 하나의 과제는 그런 고전을 자신의 언어로    전이 시키는 독창성을 보여줄 때이다. 그러한 그의 의지는 이미 이번 전시에서 명백하게 내보이고 있다 . 이전의 작업보다 곡선이 많이 사용되고, 형태도 더욱  부드럽게, 형상을 고정화 시키지 않는 작품들은 그러한 그의 새로운 변모를 예감케 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조각가들이 단순히 순수한 형태에 대한 탐미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서 반복적인 여체를 되풀이 하는 것은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누구에게든 스승은 있다. 그래서 보다 창조적인 작업을 하기 위해 마치 브랑쿠지가 그의 스승인 로댕 곁을 떠나면서 남겼던 그 유명한 일화 "거대한 고목 밑에서는 잡초도 자라지 못한다"는 명언은 아직도  스승의 문하에서 작업을 하는 작가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이경재의 경우도 그가 조각을 배웠던 스승들의 영향과 흔적이 인체를 다루는 기법이나 기교, 사믈을 묘사 해내는 부분에 간헐적으로 남아 있음을 털어낼 필요와 때가 되었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좋은 스승을 만난다는 것은 때로 당시에는 힘들고 고통스럽겠지만 훌륭한 선생의 문하에서 조각을 다루는 모든 테크닉을 완벽하게 익힐 수 있다는 점에서 이경재로서 대단히 유익하고 행운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정한 예술가에게 있어서는 위로는 스승이 없어야 하며, 옆으로 벗이 없어야 하며, 아래로는 제자를 두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만이 독특한 표현과 양식으로 모두에게 감동적이고 생명력 있는 작품을 창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경재의 이번 전시는 그의 새로운 조형성과 독창성을 열어 보이는 계기를 갖게 되는 아주 의미 있는 전시가 되리라 여겨진다 .            


                                    김종근 (홍익대 겸임교수.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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