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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전시서문, 평론

[안치홍]숲속의 낮과 밤, 그리고 ‘오래된 미래’

안치홍전 ‘울림(鬱林)’


숲속의 낮과 밤, 그리고 ‘오래된 미래’


이 태 호(경희대 미술대 교수/미술비평)



1. 숲속의 낮과 밤

작가 안치홍의 이번 전시 ‘울림(鬱林)’은 특별하다. 우리에게 특별한 체험을 하도록 유도한다.

그는 도시 한가운데에 숲을 옮겨놓고 있다. 그 숲은 우리가 흔히 산속에서 만나는 것과는 다른, 기이한 숲이다. 그 숲이 있는 전시장 실내의 전등이 약 3~4분의 간격으로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한다. 그래서 관람객은 그의 전시 작품 앞에서 ‘낮과 밤’을 체험한다. 우리는 밝은 햇빛 아래에서의 숲, 그리고 갑자기 그믐 즈음의 어두운 밤의 숲, 그 한가운데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작가는 거의 반강제적으로 우리에게 그 체험을 하도록 유도한다. 무엇 때문일까? 그런 공간과 시간을 만들고, 구태여 우리를 그곳의 한가운데에 빠뜨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낮의 풍경

수많은 나뭇가지들이 덩어리로 뭉쳐서 하나의 거대한 줄기가 되어 한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다. 폭풍속의 불길처럼 그것은 내 머리위에서 뻗어나가 방 끝, 저쪽까지 가 넘실댄다. 하늘을 향해 제각각 나아가는 작은 나뭇가지들은 생명의 표현이다. 그 나뭇가지 하나하나가 서로 몸을 부딪치고 비벼대고 뒤섞이며 만들고 있는 에너지. 그것들이 뭉쳐 다시 하나의 거대한 에너지가 되어 허공을 가르며 더 뻗을 곳을 찾고 있다.


밤의 풍경

이윽고 실내의 등이 꺼지고 밤이 찾아온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어둠이다. 어둠속에서 우린 먼저 이유가 분명치 않은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우리의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려 할 즈음 점차 그 존재를 드러내는 나무둥치와 나뭇가지들. 상상의 동물이라는 용(龍)이 저런 모습이었을까. 희미한 달빛을 받은 듯 나뭇가지는 어둠속에서 신비한 빛을 띠며 용틀임을 시작한다. 같은 풍경도 어둠속에선 같지 않은 풍경이 된다.

밤에는 밤의 정령(精靈)이 숲을 지배한다. 어떤 동물들은 어둠속에서야 행위를 시작하고, 식물들도 낮의 생명현상을 접고 밤의 생명현상을 시작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인간들은 이제 밤의 생명현상을 잊었고 잃었다. 현대도시는 어둠을 몰아냈다. 도시속의 인간들은 오직 한낮의 밝음 속에서만 산다.

우리가 잊거나 잃은 것은 밤과 어둠만이 아니다. 자연을 잃었다. 숲속에서 이루어지는 그 신비한 질서, 순환, 주고받음의 고리는 이제 끊어졌다. 도시에서 달은 전광판 뒤에서 추억처럼 희미해졌으며, 밤하늘에서 별은 실종됐다. 그리고 작은 생물들은 고속도로 위에서 충돌사와 익사를 되풀이하고 있다.

인간들의 교만의 역사는 수 백 만년에 걸친 생물들의 잉태와 진화, 순환의 고리를 단절시키고 있다. 하루의 생존과 쾌락을 위하여 수 백 만년동안 진화해온 생물은 멸종되고 있고, 아마존의 숲이 파괴되며, 지구의 온도는 계속 상승하고 있다. 앞으로 닥쳐올 재해와 파멸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이제 그리 귀한 편이 아니다.

하지만 뒤늦게나마 인간들은 자각하기 시작하고 있다. 다른 무엇보다도 인류의 생존을 위해 저 무자비한 개발과 자연파괴가 중지돼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도 저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자연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