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덕의 중독, 혹은 감염
젊은 조각가 서영덕의 관심은 인체다. 인체에 대한 탄탄한 조형적 이해와 관심을 기본으로 세상이야기를 담아내고 풀어낸다. 연출을 통해 이야기를 설명적으로 전달하기보다는 조형화된 인물들의 동세와 표정을 통해 미루어 짐작케 한다. 사람 사는 세상이야기를 사람 형상을 통해 전하고 있는 것이다. 조각이든 세상이야기든 그에게는 사람이 기본이요, 중심이다. 작업을 관통하는 모티프 역시 사람이다. 다양한 이야기와 이런저런 표정의 사람이 만들어지는 서영덕의 산실(産室)에는 크고 작은 인체 형상이 가득하다. 두상, 입상, 흉상, 토르소 등 다양한 형식과 포즈의 남녀조각상들이 망라되어 있다. 서영덕의 인체에 대한 조형적 관심이 깊고도 넓음이다. 대부분이 누드 조각상인 이들은 모두 힘들다는, 이른바 용접술을 사용한 철조용접조각들이다. 사실 조각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엄밀히 말해 소조 과정을 거친 것들이다. 쇳덩어리를 주무르면서 인체를 성형한 것이 아니라, 쇠붙이를 하나하나 부분적으로 녹이고 이어 붙여나가면서 원하는 모양으로 완성한 것이다. 서영덕은 드로잉, 모델링, 캐스팅, 웰딩(welding) 등 시작에서부터 완성에 이르는 모든 과정은 전통/정통의 제작 과정을 충실히 따른다. 또 그 모두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마무리한다.
산고(産苦)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는 일련의 복잡하고 예민한 과정을 통해 태어난 그의 인체는 알 수 없는 뭔가에 중독, 혹은 감염된 듯 퀭한 모습이다. 전체적인 표정과 동세가, 세부적으로는 신체 각 부분, 특히 얼굴 부분의 표정이 그러하다. 한편 입을 굳게 다물고 눈을 지긋하게 감고 있는 얼굴 표정은 마치 구도자의 모습처럼 보인다. 실로 오랜 고행과 수행을 마친 수도자처럼 깡마른 표정들이다. 일체의 세속적 욕망과 욕정이 거세된, 조형적으로도 군더더기가 없는 절제된 표정과 표현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결코 편안한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젊은 남녀, 특히 청년의 표정에는 무섭도록 잔인한 무언가를 인내하고 있거나, 세상의 냉정하고 잔혹함에 대해 눈을 감아버리고 있음이 역력하다. 때론 잔인, 혹은 섬뜩하기도 하고 스스로 흉측하기도 하다. 일부 인체는 머리가 싹둑 잘려 있거나 신체가 부분적으로 뭉개져 있다. 실물보다 훨씬 큰 모습으로 바닥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청년 두상은 보는 편안함을 넘어 알 수 없는 공포나 두려운 무엇을 짐작케 한다. 동시대 일그러지고 위축된 청년들의 존재를 역설적으로 강조하고 부각시키려는 듯 엄청나게 커다란 크기로 제작한 것일까?
이와 같은 이런저런 표현이 가능한 것은 아마도 서영덕이 체인과 용접술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반 주물 작업으로는 작가 특유의 조형적 고민과 이야기를 오롯이 담아내지 못한다. 부분적으로 캐스팅해서, 이른바 앗상블라주 형식으로 조합할 수는 있지만 통으로 그가 전달하고자하는 이야기를 떠낼 수는 없다. 서영덕의 조각들은 바닥에 놓이거나 벽에 부착되거나 천정에 달린다. 또 다른 의미에서 대단히 입체적이고 실험적이다. 그들은 모두 체인으로 뒤 덮여 있다. 소위 철인들이다. 체인 단편들로 피부조직처럼 인체를 감싸 안으며 하나하나 땀을 뜨듯 직조했다. 그의 조각은 조각의 기본 형식에 충실한, 실로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대단히 정신적인 작업이다. 체인 단편들과 용접술의 만남으로 지금의 서영덕 조각은 가능했다. 그들은 얽히고설킨 복잡한 세상처럼 끊임없이 서로를 물고 물리며 온 몸을 휘감고 있다. 서영덕의 작업은 이른바 체인 리액션(chain reaction)이다. 원하던 원치 않던 특정 분면과 좌표 상에 위치할 수밖에 없는 인간관계와 사회 구성원으로서 가지는 시스템과의 역학 관계 등을 생각하게 한다. 어떤 사건이나 현상으로 인해 원치 않는 영향을 받게 되는, 보이지 않는 연쇄반응을 짐작케 한다.
미술을 전공하건 타 전공을 하건 먹고 사는 문제와 진로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산업 경제가 전반적으로 위축되고 상업 자본 중심으로 세상이 빠르게 재편되면서 기성은 물론 젊은 청년들의 사회 진출이 흡사 동맥경화 상태다. 심각한 사회문제인 청년실업이 그중 하나일 것이다. 서영덕은 일부 견고하게 사회 시스템 내에 붙어 있거나 한편으론 유리되기 시작하여 떨어져 나가버리는 사회 현실 풍경을 특유의 인체묘사를 통해 적나라하게 풍자하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 또 서로를 견디기 위해 맞물리면서 꿈틀거리는 현상과 현실을 표현하기 위해 찾은 재료가 체인이었다. 체인 단편들은 핀으로 박혀 있다. 다른 단편들과 하나의 핀을 공유하며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다. 빛을 받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반사율을 보이는 등 우리네 삶의 모습과 닮았다. 그의 조각은 빛에 따라서 밝기가 다르게 빛나는, 표정이 살아 있는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움직이는 조각이다. 물론 실제로 움직이지 않는 오브제지만, 보는 각도에 따라서 다양한 변화를 보이는 움직이는 물체처럼 느껴진다. 많은 이해관계가 치밀하고 견고하게 교차하고 있어 벗어나려 해도 벗어나기 힘든 현실 풍경, 한계상황을 돌아보게 한다.
서영덕의 작업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반복이다. 소재와 재료, 기법 등이 그것이다. 특히 절망과 고통의 반복, 가능성과 희망의 반복이 두드러진다. 반복과 집적으로 그러한 행위와 사고를 이어나간다. 그려나간다. 마치 희망의 별자리를 새겨 나가듯 인간 세상의 이런저런 기성 좌표를 침투해나간다. 조직적이기보다는 랜덤한 표정이지만, 한편으론 치밀한 조형적 탐색으로 보인다. 서영덕은 체인이라고하는 작은 단편 수 천 개를 용접봉으로 지지고 녹여 붙이며 지금의 형태를 만들어 냈다. 서영덕은 곪고 곪아 썩어 문드러진 불감의 세상, 인간을 지진다. 깨운다. 녹여 뭉뚱그린다. 수술하듯 봉합한다. 상처, 눈물, 아픔 등 잉여의 감정이 촛농처럼 뚝뚝 흘러내린다. 떨어뜨린다. 우리네 영혼을 잠식하는 기성의 볼썽없는 바이러스, 상업적 자본으로 대표되는 물질만능시대의 감염균과 치열하게 맞서고 있다. 싸우고 있다.
그의 인체는 대체로 견고하다. 그러나 무언가에 전염, 감염되어 속절없이 녹아 무너져 내리고 있다. 속이 꽉 들어찬 형상도 아니다. 일견 견고한 인체로 보이나 가까이 다가가면 성긴 모양으로 서 있다. 텅 비어 있다. 겉으로는 깔끔하게 마무리되어 있다. 이면을 들여다보면 용접술에 의해서 지져지고 뭉개지고 녹여져 있다. 기왕의 견고하게 연결된 체인과 체인을 한 번 더 달구고 지지고 녹였다. 잔뜩 성이나 있다. 흡사 부종(浮腫)처럼 불규칙한 용착상태를 보인다. 무언가에 의해 감염되고 그것의 전이가 빠르게 이루어져 온 몸이 썩고 있음이다. 겉으로는 담담한 표정이다. 속이 타들어가고 온 몸은 바이러스에 의해 감염되어 녹아들어가는 절대 절명의 한계 상황이다. 그러나 태연할 수밖에 없는, 불감의 단계를 연출한다.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있는 관골과 하악골이 분명하고 견고하게 드러난 깡마른 상태의 표정이다. 어쩔 수 없음을 용인하는 대단히 이성적인 포기, 불가항력적인 한계상황을 제시하고 있다.
서영덕의 실제 모델은 대한민국의 30대 남성이다. 불투명한, 절망적인 삶으로 몰아가는 비정한 현실 속 익명화된 청년 노동자의 이미지를 담으려 노력했다. 냉정하고 이성적인 양, 이를 악물고 눈을 감고 있는 표정이 대단히 역설적이다. 녹록치 않은 삶에 지친, 흐르는 침묵과 손을 쓰지 못하는 무기력한 한계상황이 감지된다. 서영덕의 청년들은 깊은 침묵 속에 잠들어 있다. 혹은 끊어질 듯 이어지며 아슬아슬하게 서로를 견디며 버티고 있다. 존재의 강한 깊은 침묵이다. 그의 인체는 모순되는 것들,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 세상의 모순되는 것들을 양립시키면서 각기 다른 방향과 질서를 보인다. 좌충우돌하며 부딪히기도 하고 따르기도 하면서 하나의 단단한 형태로 각자의 자리를 걷잡고 있다. 뼈와 속을 훤히 드러내고 일체의 감정을 철저하게 거세한 냉정한 표정, 감성을 제어한 깡마른 인물들의 얼굴 표정은 대한민국의 30대 후반 남성 노동자의 이미지로 지식/육체노동자를 포괄한다. 그들은 대단히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보인다. 냉랭한 기운이 흐른다. 시선은 눈을 감고 있다. 포기, 혹은 지친 표정일 수도 있다. 절대자에 대한 구원을 희구라도 하는 걸까. 노동과 노동 현실에, 노동을 할 수 없는 한계상황에 대한 고민과 생각, 혹은 미래의 모습들도 투영된다. 작가의 심정이기도 할 것이다. 서영덕은 이를 위해 실제 깡마른 모델을 대상으로 했다. 전두골, 관골, 하악골이 발달되어 있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남자 나이 서른을 넘기면서 마흔을 바라보면서 지난 시절을 돌아보는, 이른바 ‘과거의 나’, ‘현재의 나’, ‘미래의 나’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하는 복잡한 표정이다. 그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면서 맞은 편 이미지와 여러 가지 조합을 보인다. 빛과 그림자가 빚어내는 다양한 표정이 흥미롭다. 그만큼 생각이 복잡하고 번민이 가득 차 있는 모습이다. 이들이 오버랩되며 수 많은 조합이 교차되는 그의 머릿속에는 그만큼 많은 세상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이다.
서영덕의 이야기는 바닥에 덩그러니 놓인 대형 두상으로 함축된다. 마치 수도사와도 같은 깊은 침묵으로 일체의 불필요한 감정을 던져 버리고 감춘 채 견고하고 놓여 있다. 서영덕의 그것은 세상을 향해 열려 있고 사방으로 마음을 통하고 있다. 무언가 분명 회복할 수 없는, 완전히 상실된 것에 대한 그리움을 인내하고 있다. 사회의 견고함에 대한 주관적인 대응이 아닌, 객관적인 대응을 보이고 있다. 용접봉으로 하나하나 지져나가면서 울분을 반추하고 마음을 걷잡고 녹이고 삭이며 비로소 희망을 본다. 땀땀이 이어나간 서영덕의 젊은 집념에 박수를 보낸다.
박천남(성곡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작가 홈페이지 : http://youngde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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